제9회 콜로키움 <아름다운 '잘' 모르겠음> 참석 소감
'모르는지 모르고 들어가 모른다는 걸 알고 나오게 되는 공간에게'
유혜정 (본교 2024년 후기 박사과정 / 인문상담사 2급)
시집전문 서점이 생겼다며 기뻐하며 함께 간 동료와 서로에게 주고 싶은 시집을 한 권씩 사서 나누며 맥주를 마시던 기억. “시 팔아서 건물 사자”라는 유쾌하고 간절한 바람 섞인 농담이 쓰인 화환을 보며 웃었던 기억. 문보영 시인이 김수영 문학상을 받던 날 낭독회에 가서 김상혁 시인과 담배를 피웠던 기억. 맥주를 파는 시집전문서점에 외부 흡연공간까지 있다니! 감탄하고 돌아오던 기억.
무언가의 시작을 목격한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어떤 시작은 너무 강렬해서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신촌역사 앞에 처음 생긴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의 모습을 그렇게나 강렬하게 기억한다.
‘위트 앤 시니컬’ 이전에 시집을 고르는 일은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픈 일이어야 했다. 아주 큰 서점의 아주 큰 책장들을 지나고 지나 아주 낮은 책장의 한 귀퉁이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일 없이는 시집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서서 정면으로 시집을 바라보며 고르는 일은 시집을 대하는 감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넓은 공간에 빼곡한 의자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시인의 낭독도, 같은 공간에 앉아서 웃거나 조금 울컥하며 시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네, 느끼던 순간도. 시는 책 속에 죽은 듯 누워있지 않고 앉았다 일어났다 떠들었다 웃고 톡 쏘다 울고 움직였다.
‘위트 앤 시니컬’은 시가 종이로만 느껴지던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 시는 사람이라고,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고 울림이고 연결이라고 말해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 화환에 써있던 축전처럼 이 시집들이 더 많은 곳으로 팔려나가고 멋진 책방지기 유희경 시인님은 건물을 사서 ‘위트 앤 시니컬’을 영원히 운영해주기를 몰래 바라왔다.
시간이 꽤 흘렀고, 기억 속의 사람들은 시절인연처럼 흩어졌지만 ‘위트 앤 시니컬’은 아직 건재하다. 그 공간을 경유한 수많은 기억이 ‘위트 앤 시니컬’을 촘촘하게 지탱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억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시니컬하게 일해 온 유희경 시인님의 성실함이 이번 콜로키움의 제목처럼 “‘잘’ 모르겠음”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알 듯 말 듯 모르겠는 이 기분을 느낄 서점이 지금도 굳건히 있고, ‘잘’ 모르겠는 마음도 받아줄 공간은 여전히 많은 사람을 매혹한다는 것이다.
2016년 여름, 시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르는지도 모르고 들어갔던 서점을 나오던 날을 기억한다. 몇 번의 방문 이후로는 시가 사람이어서 영원히 모르겠지만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싶어졌던 기억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은, ‘잘’ 모르겠는 마음이 사실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주는 유희경 시인님의 목소리에서 모른다는 것,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해지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유희경 시인님의 정의처럼 상황을 뒤집는 ‘위트’도,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시니컬’도 어느 한 가지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로 결심하면서.